↑ 누구보다 말에 대해 잘 아는 조련사이지만 `영원한 조연`으로 머물 뿐이다. (ⓒ레이싱미디어 이용준)

- ‘영원한 조연’, 말 조련사들의 일상과 애환
- 지원은커녕 마사회 수익 사업 때문에 마방 임대료까지 낼 판


“당대불패를 배출하는 데 일조했지만, 우리들은 여전히 조연에 머물 뿐입니다”
“말을 잘 육성하는 일이 제일 중요한 일인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천대받고 있습니다.”
“외국과 달리 국내 경마 산업 구조는 역피라미드 형식이기에 다들 그만두고 싶을 뿐입니다.”


한국마사회의 ‘말 조련사’ 양성 과정이 정부로부터 인정받아 올해부터 교육비를 지원받게 되는 가운데, 마사회는 3월부터 제5기 말 조련사 양성 과정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또 말 조련사 관련 자격증이 국가 인증 자격으로 신설되면서 말산업 전문직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되는 형국이다.

하지만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장수경주마목장의 말 조련사들을 만나 본 ‘현실’은 마사회나 정부의 ‘장밋빛 전망’과는 너무 달랐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인력난, 재정난, 지원 부족 등을 손꼽으며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현재 종사 중인 말 조련사들은 내후년이면 대부분 그만둘 생각까지 한다고 했다.

우선 지역적 특성과 전문 인력 보급 등 근본적 문제 때문에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 장수경주마목장은 외부와 동떨어져 있어 말 조련하는 기술을 가진 이들이 쉽사리 지원하지 않는다. A 조련사 밑에서 도제 수업을 받고 있는 B 씨는 “생필품을 사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하거나 5만 원 이상이 되어야 배달을 해 주는 문제가 있어 생활하는 데 많이 번거롭다”고 했다. 게다가 한국경마축산고등학교 등 관련 전문학교에서는 ‘돈’ 문제 때문에 장수목장으로 실습 훈련을 내보내지 않고 있다. 어느 정도 교육이 된 학생들이 쓸만해지면 돈을 보고 승마장으로 가버려 똑같은 교육을 반복하는 문제도 있다.

이에 대해 C 조련사는 “이곳에서 잘 교육받고 나가면 자기 발전도 있고 경마공원에 취직할 수 있는 등 비전이 있는데도 대부분 당장 돈이 되는 곳을 보고 간다. 얼마 전 경마축산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생 대표가 후배들에게 ‘돈을 먼저 알지 말라’고 충고한 일은 되새겨볼 일”이라고 지적했다.

재정난도 마찬가지다. 초창기에 위탁 관리비는 두당 8~90만 원에서 지금은 약 110만 원으로 소폭 올랐으나 건초값과 사료값은 배 이상, 인건비는 3배 이상 등 올라 ‘앞으로는 남고 뒤로는 밑지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전기세는 백 단위가 넘고, 기술 있는 인력의 인건비는 웬만한 기업 부장급 정도를 줘야 한다. 말을 많이 확보하지 못한 일부 조련사들은 항상 적자에 시달려 마이너스 통장을 쓰고 있는 지경이다.

이런 와중에 한국마사회가 수익 사업의 일환으로 제주목장에는 오는 3월부터, 장수목장에는 내년부터 ‘마방 임대료’ 명목으로 마방 한 칸 당 5만 원씩 받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련사들은 “보조를 해도 남아 있을지 모르는데 임대사업을 할 수 없는 마사회에서 마방 임대료까지 걷겠다는 건 일을 그만두고 나가라는 얘기”라고 했다.

마방 임대료에 뛰어오른 관리비에 인력난까지 겹쳐지니 결국 마주들이 내야 할 ‘위탁 관리비’가 오를 수밖에 없다. 이는 다시 마주들에게 비용 부담을 넘기는 꼴이니 말들을 잘 순치하고 관리해야 할 목장에 말을 맡기는 일을 피하게 되고, 순치가 제대로 안 된 말들이 경주를 뛰다 보면 낙마 사고가 발생하거나 경주 성적이 안 좋게 되는 결과를 낳기 마련이다. 일부 감독들은 말을 조련하고 육성할 필요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할뿐더러, 마방을 못 채우면 곧 회수하는 마사회 정책 때문에 제대로 육성이 안 된 말을 서둘러 채우기도 한다.

이와 관련, 장수목장의 D 조련사는 “마사회는 우리들이 개인사업자이며 ‘예산’이 안 잡혔다는 문제로 지원 불가 통보만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경마산업의 고질적 악순환이 말산업을 육성한다는 마사회의 잘못된 정책과 현실을 무시한 행정에서 비롯되는 셈이다. 빈번한 인사 변동에 따른 업무 차질, 제도에만 얽혀 말산업의 현재를 보지 못하니 육성은커녕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다는 것.

말 조련사들은 국내 경마산업이 발전하려면 경마 선진국처럼 말을 육성하는 목장과 조련사들을 잘 지원해주고 위탁 관리비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예산을 낭비하지 말고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근본적 문제는 말을 ‘육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산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말들의 유치원이기도 한 목장의 현실을 바로 알아야 하고 생산자와 조련사에게 실질적 혜택을 줘야 경마가 발전한다”고 역설했다.


이용준 기자 cromlee21@krj.co.kr